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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했던 왜군!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했던 왜군!)

임진왜란은 학교에서 배우고 수 많은 책, 영화, 드라마 등으로 소개되고 알려졌지만, 일본군이 어떻게 부산에서 한양까지 20일 만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는 항상 의문이었다. 건장한 젊은 사람이 부지런히 걸어도 20일이 걸리는데, 이들은 갑옷과 무장을 하고, 중간에 전투를 하고, 문경새재같은 험한 산과 크고 작은 강을 건너면서 거의 같은 기간에 도착했다.

여러분들은 이해가 되는가? 역사 전문가들과 군사 전문가들의 자료를 살펴보아도 시원하게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 쪽 사료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신속하게 한양에 도착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 단서는 찾았다.

그 단서는 아시가루(足輕, 족경)라고 불리는, 요즘 말로 경보병에 있다. 일본에는 전국시대라고 불리는 130년간의 전쟁 시기가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활약했던 시기였다. 아시가루는 모두가 활용했지만,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누구보다 탁월하게 아시가루를 활용했다.

아시가루는 완전무장하고 물통, 식량 등을 휴대해도 4kg이 넘지 않았으므로, 기동력이 뛰어났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상관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에서 살해당하자, 2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80km의 거리를 단 2일에 주파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상대방은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기습을 받고 패배하였다.

다른 예로 더 극적인 것은 53km의 거리를 5시간에 주파하였다. 무장을 한 군인들이 거의 마라톤 수준으로, 그것도 야간에 달렸던 것이다. 일본 학자들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전투의 승리는 히데요시가 천하를 거머쥐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군대를 경험해 본 사람이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불가능하지만, 그 불가능한 상식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아시가루를 수 십 년간 활용했던 일본군이 조선 땅에 상륙하여 조선왕을 생포하기 위해 달리듯이 진군한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왜관에 거주했던 일본 상인, 조선을 돌아다닌 일본 승려들이 일본군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 우리 조선이 일본군을 너무 몰랐다.”

-신영목님, 박니브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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