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구적(守舊的) 보수주의자들에 경고(警告)함!
[<리더십 이야기(17): 20세기의 기독교 지도자들: 제리 팔웰(1)>
제리 팔웰(Jerry Falwell) 목사를 아십니까? 그는 미국 버어지니아 주 린츠버그에 위치한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의 설립자입니다. 이 학교는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대학입니다. 제리 팔웰은 1979년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를 조직하여 1980년대 이후 미국 신보수주의 정치를 이끌었던 기독교 운동 지도자입니다.
2007년 향년 73세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New York Times는 그에 대해 “미국정치에 종교적 보수주의의 언어와 열정으로 대소동을 일으켰던 근본주의 설교가였으며, 선거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기독교 근본주의의 정신을 세속적인 정치영역으로 수혈하여 수십 년간 공화당을 도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종교적 권리를 최대한 활용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직한 Moral Majority를 중심으로 공화당을 적극 지원하여 1980년, 1084년, 그리고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에서도 제리 팔웰은 조지 부시 대통령 부자가 대통령 선거에 승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제리팔웰은 미국의 많은 기독교 근본주의 혹은 보수주의 지도자들이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활동했던 것과는 달리정치무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기독교 보수주의의 가치들을 확산시켰습니다. 그는 정치의 변화는 도덕적 가치의 재발견과 도덕적 변화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보수와 기독교적 보수의 연합을 통하여 미국사회의 보수주의 가치를 통한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미국의 정치전문가들은 제리 팔웰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제리 팔웰이 이끄는 Moral Majority의 생각 뒤에는 동성애, 낙태, 그리고 심지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다할지라도 이러한 서로의 차이점들을 연합으로 이끄는 주장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 보수주의적 가치들과 정치적 보수주의 가치들과의 연합을 통한 보수주의의 궁극적 승리라는 목적과 비전이었으며, 제리 팔웰은 이것을 이끌어 낼 정도로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과 같이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바탕으로 그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현실화시킨 것은 분명히 제리 팔웰의 리더십과 Moral Majority의 이상은 미국정치에 거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Young Ho Jung 목사님-
Moral Minority 의 정신은 일종의 속세와 구별하는 종교의 근본
정신에서 유래되었고, 실제 종교란 세상의 풍조와는 서로 상반되게
나아가는 고귀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고집을 강조했지요.
세상을 등진 생활의 신조가 종교의 가치란 이야기는 자연 세상의
정치를 저속한 삼류 변두리 극장 정도로 저속한 부류로 취급하는
오류라면 오류를 범한 것이지요.
여기서 오류라고 이름 하는 것은 세상을 비난하면서 굳이 종교라는
것을 고집해서 나아가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종교집단을
형성해서, 편을 가르고 서로 나누는, 세상보다 더한 세상 형태를
보여 주는 장본인들이 되는 역설을 낳게 했다는 거지요.
지혜를 가질 것 같은 탐스러운 선악과를 취함으로서 인간사회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이를 세상이라고 부르고, 이 보다 더 우월한
것이 세상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생활을 종교라고 정의하고, 이를
행하고 따르면서 그 세력이 강성해지자, 세상 사람들에게 구별할 것을
강요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또 다른 심각한 교만의 씻을
수 없는 세상 죄를 자초하게 되었지요.
이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들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세상 교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길을 가게 되는
종교 풍조를 낳게 하여 종교가 마치 세상 엘리트 양성 코스인양
착각하게 되는 Moral Minority를 형성하게 된 것이지요.
Moral Minority 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했지요. 종교적 엘리트
의식으로 무장된 것으로 세속적인 사회를 구별한다는 것은 일종의
또 다른 종교 사회 내에서 기반을 닫기 위한 변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문제는 이들이 종교적 세력을 동원해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전파한다는 그럴듯한 이론을 가지고 또
다른 세상적인 행위를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지요.
신앙을 종교화 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는 일부 대형교회의 현실적 문
제점을 살펴보면, 위에 언급한 문제점들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바라
볼 수 있게 되지요. 결과적으로, 종교사회에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 소위 종교 정치하고 있는 Moral Minority 들이 Moral Majority
를 의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선한 영향력을 세상 정치에 접목시킨다는 명목은 기성의
신앙인들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 올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다는 긍정적 믿음을 받아들이는 한,
별다른 반대의 뜻을 밝힐 이유는 없지만, 예수님이 겪으시고 걸어가신
십자가 길이 아닌 어떤 현상도 모두가 예수님을 현실정치의 왕으로
인정하고자한 잘못된 제자들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근본부터 왜곡하는
것밖에 되지 않고, 십자가 의미를 퇴색하는 결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정치세계가 어떤 것이지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만큼,
세상 현실정치의 주소는 부패 그 자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이
오셔서 선택하신 사복음서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정치를 하지 않으신
의도를 너무나 분명하게 분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소위 개혁적인 보수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파워 게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요.
입으로는 국민들은 내세우고 있지만, 그들은 국가관이 빈곤할
뿐만 아니라, 정권의 사주를 받고 있는 떠내기 들이었지요.
강원도 성 접대 사건들의 배후나, 윤 대변인과 같은 사람들이
소위 잘나간다는 개혁 보수의 대표적인 인물상이 아니었는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새로이 청교도적인 Moral Majority의
제창은 매우 뜻 깊은 의미가 되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기존의 보수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매우 개인적
이면서 부도덕했으며, 때가 불리하게 작용하기라도 하면 언제라도
무책임하게 타협하거나 멀리 도망 갈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었지요.
연약한 보수들이어서 이들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북방의 이방인
이었던 변두리 민족에게 멸망당했던 것처럼 소수 좌파세력들에게
쉽게 지조를 던지고 항복할 자들인 것이지요.
국민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지요.
결과적으로 보수가 태생적으로 잘못 된 것들이었기에 그동안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과 이후 한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들과 더불어 소수 좌파들이
여태껏 기승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연합하지 못하는 연약한 보수의
약점 때문이었지요.
보수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고, 반면에 좌파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를 쓰고 덤벼든다면, 그 승부는 기다릴 필요 없이
누가 승자인 것을 쉽게 가릴 수가 있지요.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정세와 국내 정치 분위기가 좌파가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라는 사람들이
시세에 눈치만 보고 몸을 던지는 행동이 없다면, 언제라도 전세가
뒤집어 질 수 있는 여지는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할 것입니다.
수구적이었으며 종북 세력을 앞세워 반사 이익만 추구했고,
비겁한 기회주의자들 이였으며, 국민들을 기만해서 자기들 이익만
챙긴 것이 소위 한국의 보수 골통들이었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젊은이들에게서 등을 지게 된 근본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고,
한국사회에 지금까지 정치다운 정치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되겠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종북이라는 어휘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만 유행
같이 선거철만 되면 유통되는 기이한 용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은 비단 나만 느끼는 현상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 이유는 선거만 지나면, 그렇게 심각했던, 종북세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언제 그랬느냐하는 정도로 순식간에 그 공방이 사라진다
는 사실입니다.
거대 교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거대 언론 집단의 횡포가 보수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과연 지금의 한국 정치는 누가 지배하고 조정하고 있는 것일까?
목숨을 걸지 않는 대부분의 보수들이 거대 언론 세력과 정부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법과 금융에 종사하는 부패한 정부 관리
들이라는 사실도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겉모양만 순한 양의 탈을 쓴 보수라는 간판만 달고 있지, 결코
그들은 국민을 위한 보수적인 정치를 할 의향이 전혀 없고, 국민의
이름으로 편 갈라서 이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국민을
우롱하는 한심한 집단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겠지요.
말이 종북이지, 어떻게 보면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주장을 수용
하지 못하는, 좌우로 단순 편협한 우리 국민성에서도 기인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고 이는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식민지 정책과
혹독한 전쟁을 격은 당연한 후유 증세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걱정되는 사실은 통일은 결국 이북과 하나가 되어야하는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건전한 종북세력들을 국민과 정부가
힘을 합해서 엘리트교육을 시키고 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와 이북 오도청이라는 형식적인 기관만 만들어 놓았지,
통일 한국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통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일어났던, 탈북 소년들의 이북 송환 사건은
단적으로 보여 주는 한국 기득권 세력, 즉 공무원 사회의 병폐가
들어난 일연의 좋은 본보기인 것이지요.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이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서 힘없는 서민들을 상대로 비자 사기나
하고 분탕질만 하고 있는 게 현 공무원 수준에 지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이 선거철만 되면, 소위 건강한 보수 집단이라고 자처하고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으니, 이들의 무엇을 믿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고 후손들에게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우리가 종북세력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들이 통일 한국의 소중한 자원이 된다는 시대의 변화를 앞서
읽고 준비하는 것이 건전한 개혁 보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국내 선거용 좁은 정치 물을 뛰어 넘어서 세계 속의 통일 한국을
그리면서 잘못된 비전을 범국민적 차원에서 수정해 주는 국민계몽과
더불어 원대한 꿈과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 줄 수 있는 탈정치적인
Moral Majority 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야 된다는 소신을 조심스레
밝히는 바입니다.
선진 대한민국, 동북아 중심국가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제언을 드린다면, 어차피 가고 있는 현실 정치가 아닌 시대를
앞서가는 세계를 향한 젊은 히든카드(Hidden Card)의 엘리트 조직
결성을 위한 정부의 준비와 국민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리더십 이야기(18): 20세기 기독교 지도자들: 제리 폴웰(2)>
리더십 이야기(17)에서 계획에도 없었던 제리 폴웰 목사와 Moral Majority에 관한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이 주제로 글을 포스팅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페친 가운데 대표적인 보수논객 가운데 한 분이 계십니다. 이 분께서 한국 보수의 미래와 관련하여 ‘자유’라는 용어마저 좌파에게 빼앗긴다면 그때 보수진영에 남을 것이란 ‘파쇼’밖에 없다는 글…을 올리셨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는 한국의 보수의 게으름, 보수의 무사안일주의, 보수의 비도덕성, 보수의 현실 안주성, 공부하지 않는 보수를 비판하면서 좌파 혹은 종북세력에 대한 비판으로 반사이익만 챙기는 보수의 행태에서 미래한국을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보수의 혁신 혹은 개혁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미국의 Moral Majority 가 어떻게 1980년대 미국의 신보주주의를 이끄는데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그런 후에 저는 제리 폴웰 목사와 Moral Majority에 관한 글을 포스팅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올렸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글을 읽으신 곽계달 박사님께서 비판적 평론의 글을 댓글로 달으셨고, 그 글에 대한 저의 답글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건강한 보수의 미래에 관한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논의되었던 내용을 댓글로만 남겨두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 토론을 다시 포스팅합니다. 여러분의 의견도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Moral Majority에 대한 비판적 견해에 대한 답글
미국 정치에서 기독교 우파의 정치참여는 매우 활발합니다. 기독교 우파 혹은 보수주의 세력이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는 미국사회가 동성애, 낙태 문제, 가정문제, 그리고 세속적 도덕과 윤리적 가치와 의식등을 중심으로 미국의 진보진영과 기독교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이 비성경적이라는 신학적, 신앙적 판단에 근거하여 성경적 진리와 가치를 수호하면서 이것들을 정치를 통해 구현하고 유지하는 동시에 선조들의 청교도 정신과 윤리의 세대적 계승을 발전시켜가고자 하는 목적에서 주로 보수적 가치를 대표하는 공화당을 지지하면서 입법과 정책에 영향력을 확장시켜 갑니다. 일종의 기독교적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죠. 일부에서는 Moral Majority를 비판적 시각에서 보고 있지만, 기독교적 가치의 세속적 구현이란 관점에서 이 운동의 긍정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1960-70년대 미국 대법원은 도덕적 문제에 있어서 매우 진보적인 판결들을 많이 내렸죠.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Moral Majority는 세속적 인본주의와 좌파에 의해 점령된 교육의위기에 대한 심각성, 그리고 진보적 가치의 확산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등 이른바 기독교적 가치의 정체성 위기에 대한 청교도 정신과 전통적인 도덕과 윤리적 가치들의 보존이라는 소명의식이 보수정당과의 연합이라는 정치운동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죠. 오늘날에도 기독교 우파의 도덕적 윤리적 호소는 여전히 영향력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수년전부터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절제’의 성윤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죠. 그리고 미국의 수많은 사립학교들이 주로 기독교 우파교회들이 운영합니다. 이처럼 기독교 우파의 정치사회적 보수주의 가치 구현을 위한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물론 이에 못지않게 기독교 좌파 혹은 진보진영이 민주당과의 연합을 통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 또한 만만치 않죠. 기회가 되면 이 주제로 글을 포스팅할 계획입니다.
2. Moral Majority는 종교엘리트들에 의해 무장된 세속적 행동이라는 견해에 대한 답글
유익한 비판적 관점입니다. 사실 제가 계획에도 없던 Moral Majority에 대한 글을 갑자기 포스팅한 것은 보수주의 논객으로 분류되는 어느 페친께서 한국의 ‘보수’가 ‘자유’라는 용어마저 좌파에게 빼앗기면 남는 것는 ‘파쇼’밖에 없다는 글을 올렸기에 도대체 한국의 ‘보수’는 무엇을 위해 ‘보수’하는가 하는 실망과 약간의 분노를 느꼈기에, 한국의 ‘보수’는 공유할 콘텐트조차 부족하고 도덕적 가치의 재발견도 못하고 moral hazard의 중심에 있어 국민들의 비판을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개혁하는 보수가 되어야 한다는 댓글을 올리면서 한 예로서 Moral Majority를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이 운동이 어떻게 미국의 우파들, 특히 기독교 우파들을 동원하면서 우파의 전선을 강력하게 구축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했습니다. 무조건 좌파에 대해서 반대만 하면서 반사이득을 취하는 식의 보수진영의 행태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보수를 하나로 묶고 연합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문화적 콘텐츠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점에서 한국의 보수진영은 한국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이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로 성장하며 통일한국의 미래를 준비하고 설계하며 실천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Moral Majority가 기독교 우파들을 결집하고 미국의 보수주의의 기반을 더욱 공고화하면서 입법과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국의 청교도 정신과 선조들의 신앙적 유산을 보존하고 강화시키기 위한 전국적 차원에서의 운동을 전개한 것은 긍정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 한국 교회와 보수진영 역시 이러한 자기혁신을 통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함이 제 글의 목적입니다. 곽교수님께서 한국의 대형교회의 행태를 비판한 것은 저 역시 동의합니다. 분명 대형교회의 행태는 Moral Majority의 관점에서 보면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개혁은 대형교회의 몫이 아닙니다. 그들 자체가 개혁의 대상입니다. Moral Majority와 같은 운동은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 깨어 있는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펼쳐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극단적인 좌우 진영의 정치논리의 노예가 되어 있고 그것에 함몰되어 있는 현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건강하고 개혁적인 보수’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건강하고 개혁적인 보수의 근거는 도덕적 윤리적 가치들의 재발견에 있습니다. Moral Majority의 정신과 주장이 미국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정치세력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공감을 형성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칼 합니다.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 건강하게 세워가는 것의 중심에 ‘윤리적 도덕적 가치들’의 재평가가 무시되어진다면 보수의 ‘자유’든 진보의 ‘평등과 평화’든 그 모든 것은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Moral Majority를 이끌었던 어떤 리더들도 미국정치에서 ‘한 자리’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이 운동을 통해 그 반대편들로 부터 “neither moral nor a majority”란 비판을 받고 갈등을 겪었고, 결국 그들도 심각한 재정난으로 1989년에, 즉 Moral Majority가 조직된 지 만 10년 만에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Moral Majority의 리더들이 그들의 운동의 영향력을 통해 권력을 소유하고 정치적 이익을 향유하고 돈을 탐했다면 그들이 심각한 재정난으로 이 운동의 막을 내리진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Moral Majority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이 건강하고 개혁적이기 위해서는 이 운동의 교훈을 배워야 하며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가치들을 중심으로 사회변화의 튼튼한 말뚝이 될 때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3. 한국의 개혁적 보수 세력의 문제점에 대한 답글
“보수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고, 반면에 좌파는 목숨을 바쳐서라도”.곽교수님의 이 말씀에 한국의 보수진영이 뼈아프게 회개하고 고민하고 그래서 개혁하지 않으면 안될 보수의 아픔이 담겨져 있습니다. “보수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보수의 목숨이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기득권’이라고 부릅니다. 오직 자신의 기득권만을 보존하는 보수는 ‘수구’일뿐입니다. ‘수구’는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논평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들 때문에 보수진영 전체가 매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한 ‘탈수구적’ 성향의 보수진영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이들이 개혁되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어두워집니다. 건강한 개혁적 보수는 좌파처럼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쟁취해야할 가치가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죄파 혹은 종북세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얻는 반사적 이득만을 챙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국민들을 향하여 건강한 나라의 미래를 위해 보수가 지향하고 혁신하는 가치들, 도덕적 윤리적 가치들이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향유하기 위하여 어떤 콘텐츠를 갖고 있는지, 그러한 가치들을 공동체화 시키기 위하여 앞으로 어떤 일들을 전개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하고 비전을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건강하고 개혁적인 보수는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변화를 지향합니다. 개혁적 보수는 변혁적(reforming)입니다. 개혁적 보수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가치들의 구현을 위해 노력합니다. 개혁적 보수는 단순한 ‘repair’가 아니라 희생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과감한 ‘remodeling’을 추진합니다. 좌파나 종북세력으로 부터 반사이득을 챙기는 소극적 태도로 보수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오직 보수진영 내부의 자기성찰과 개혁 혹은 혁신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그것들을 ‘운동’으로 발전시켜 국민 속에 그 공간을 넓혀가는 노력과 헌신이 미래한국을 보장할 것입니다. 글이 길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Jerry Falwell 한국식 발음은 ‘제리 폴웰’로 정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