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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통찰력의 새시대

한 우물을 깊이 파면 더불어 너비도 넓어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너비도 넓게 잡다보면 자연 깊이도 생기고, 원하는 곳에 따라 집중적으로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융통성도 생긴다. 깊이와 너비가 아니라, 목적과 상황에 따라 경우가 다르겠지먄 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토목과 같이 지식도 깊이 판다는 의미에서는 별다름이 없지만, 지식은 파면 팔수록, 끝도 없이 무한정 깊이의 경지를 넓힐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과학이야, 현상을 증명해야하기에 그 깊이의 한계를 정할 수 밖에 없지만, 이와 달리 예술이나 종교는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서 그 깊이와 너비를 도무지 가늠할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말하지 않는가? 어쩌면 과학은 인생의 한계에 비례하지만, 예술은 인생의 한계와 상관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연과 함께 그 맥을 함께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자연은 유구한 데 인걸은 간데 없는 것이 자연의 위대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인간 한계에 달하는 지식 수준은 자연과 예술과 종교가 하나 될 때, 그 한계를 넘어서 영원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인간 한계에 매인 지식 수준은 먀치, 소경이 코끼리 뒷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를 연상하는 것처럼 부분적이고 단편적일 수 없다. 아무리 수 많은 지식의 무한 공유시대라고는 하지만, 코끼리와 유사한 코끼리의 형상은 짜집기해서 그려는 내겠지만, 코끼리의 본질인 내면과 형상의 디테일에는 결코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시대가 발달되고 고도의 수준으로 과학이 진보된 사회라 할지라도, 인간 지식의 한계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그 남은 여백을 어떻게 예술로, 자연으로 승화시키느냐가 미래 인간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지식이 완전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시인하고, 보이는 의식 세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의식 영역까지 지경을 넓혀 일상의 깊이를 더 해야하는 것이다.

장차, 일상의 깊이를 더 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궁극적인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고, 지식 산업에서 벗어난 지혜의 산업으로 확장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시대의 특징인 소위, 제 7의 감각이라고 불리우는 초연결 지능과 융합, 그리고 붕괴와 건설을 병형해야하는 혁명적 혁신성을 아우르는 네트워크 통찰력에 대한 이해를 병행해야 할 것이다.

한계를 뛰어 넘는 지능형 지식 기술시대에 적합한 인생을 설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한, 결코,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안응 곽계달♡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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