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가장 평안한 삶, 죽음. 삶과 죽음을 융합하는 인생 창업을 하라

2016.03.27

평생에 이 두 눈으로 동물들이 노환으로 자연 생명을 마치는 순간을 만난 적은 없다.

만약 있다면, 어릴 적 영화에서 코끼리가 무덤으로 찾아가서 최후를 맞이하는 것과 늙은 수컷 사자가 무리를 떠나 방황하다가, 죽음 직전에 광야의 황량한 땅에 엎디어 그렇게 슬프게 포효하는 장면을 본적은 있다.

그리고 반려견들이 수명을 다해서 화장했다는 주위 이야기도 들은 죽은 있지만, 내 손으로 눈을 감겨 본적은 없었다.

오래 전, 늦으막히 집으로 올라가는 산비탈에서 작은 집토끼를 우연히 만나서 조심스레 집으로 데려 와서 빌라 어린이 놀이터 구석에 집을 지어, 이름을 도레미로 지어서 키운 적이 있었고, 다시 새끼를 낳아 솔라시로 이름을 지어서 오래 키운 적이 있었다.

정이 흠뻑 든 어느 이른 아침에, 땅을 파고 나온 도레미는 빌라 앞 도로에서 차에 치여 사체로 발견 되어서, 몸소, 사체를 거두어 땅에 묻은 적이 있고, 또한 오리도 키우다, 동네 오소리(신원불명의 동물?)에게 날치기 당해서 뽑힌 털만 우리 안에서 발견 된 적도 있었다.

25년 전 아버지를 영동 세브란스에서, 그리고 2016년 9월 말에 어머니를 필자가 지켜 보는 가운데, 저 세상에 보내는 체험을 통해서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우리에게는 삶도 두려움이지만, 삶 가운데 극치의 두려움은 아무래도 죽음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그러나 어쩌면 죽음이야말로 우리 삶 가운데 필히 존재해야 하는, 두려움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의 평화의 상태로 인도 되어지는 소중한 삶의 방편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순간에 만나는 저승 사자는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이 기쁨으로 반겨야 하는 기다림의 대상이어야 할 것 같다.

삶과 생의 고난의 바다, 즉 고해에서 우리를 구출해 줄 이가 바로 저승 사자가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만나는 ‘죽음의 삶(Life of Death)’이라는 동영상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평범하지만은 않다.

죽음은 우리를 영원한 평안의 차원 높은 세계로 인도하는 생명체에게만 부여된 특권이 아니겠는가? 저승 사자는, 기다리는 준비된 삶에게는 무서움으로 다가 오지 않고,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평안히 다가 온다.

가장 평안한 삶이 죽음이다.
바쁘게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이 시대에, 저승 사자를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고 사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삶 가운데, 늘 죽음의 삶을 초청하는 일상을 살면, 그것이 삶을 더욱 풍성하게 가꾸어가는 품위 있는 죽음이 되겠지?

생에서 삶과 죽음의 융합이야 말로 창의와 혁신의 시대를 앞서가는
파괴적 혁신을 실현하는 이 시대 최고의 인생 창업이 아니겠는가?

♡ 안응 곽계달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