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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의 경지?

깨우침이란, 우주 운행의 이치를 꿰뚫는 것이고, 구슬을 꿰어서 보배를 만드는 게지요. 깨우침 자체가 미륵(행동하는 양심, 걸어다니는 부처)이라는 의미입니다.

깨우침이란 히브리어로 ‘안다’는 의미로 비추어 해석해 보면, 머리로 지식을 아는 것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 까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게지요. 스스로 이루어지는 경지, 즉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당연히 ‘행동하는 양심’마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 됩니다.

깨우침은 차원이 다르기에 깨닫지 못한 낮은 단계의 차원을 모두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더불어 이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걸어 다니는 부처’라는 해석은 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부분적으로 접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통한 부처는 구차하게 걸어 다니면서 구걸하지 않아도, 이루려고 애써지 않아도, 나비가 꽃을 찾듯이 온 사통팔방에서 진리의 도를 구하러 구름떼 같이 찾아 모인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라는 단어를 구차하게 사용한 겁니다.

대승불교의 행동하는 부처의 개념은 너무나 인간적인 염려와 근심에서 파생된 것으로 깨우침의 진정한 의미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적인 부처를 상상한 겁니다.

굳이 ‘도’라는 것을 인격적인 면으로 접근하고 싶은 인간들의 욕심이 발동해서 나타난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깨우침이란 시공을 초월해서 그 진리의 힘에 의지해서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성령의 인도함이라고 여기지요. 진리의 영이 자유하게 하는 겁니다.

그것이 소승불교이든지 대승불교라는 해석으로 나서든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선교와 전도를 행하든지 간에 진리의 깨달음이란, 이 모든 세상적인 형식을 넘어서는 것으로, 그 과정이야 어떻든지 간에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모든 경계가 사라진 모양을 취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스스로 존재하는 깨우침의 의미입니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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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참뜻 -행동하는 양심) [3분 인문학]

예전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륵’은 부처님은 좌불 이라고 해서 수행자고, ‘미륵’은 행불 이라고 해서요, 요즘말로 행동하는 양심이에요.

‘미륵’이라는 게 의미하는 발이 뭐냐 하면 행동한다는 거예요. 걸어 다닌다.

석가모니같이 앉아서 수행하는 분이 세상을 다 건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건 소승을 대표하고, 대승보살을 기다린 거예요, 제가 볼 때는 소승의 이 아라한 같은 그런 존재의 부처님보다 대승보살, 살아 숨 쉬면서 민중과 함께 살아가면서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시켜 줄 그런 리더를 ‘미륵’이라고 해서 기다린 거예요.

현실을 부정하고 그냥 속세를 초월하시는 쪽으로 나가게 못 만들고, 종교인들을 계속 속세에 참여하게 만드는 힘이요, 원래 ‘미륵’이 행동하는 양심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래요. 걸어 다니는 부처,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행동하는 양심이 ‘미륵’이에요. 여러분 그냥 진리를 알고 골방에 계시면, ‘미륵’이 못 됩니다. 움직이셔야지 ‘미륵’이 돼요. 양심을 실천하고 다니셔야. 그래서 다 ‘미륵’이 되시면 돼요.

– 홍익학당 윤홍식  (161110 목낮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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