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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 그 사이에 놓인 깊은 고뇌?

행위와 믿음 간에 놓인 골짜기의 깊이를 인간의 머리로 가늠하기는 쉽지가 않다. 

믿어라 해서 믿으면 행하라 하고, 행하라해서 행하면, 믿으라하고 행하지 말라고 한다. 

골짜기 사이에 빠져 있는 성도들은 그야말로 머리가 팽팽 돈다. 

그럼에도 진작 강대성에 서서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해서 인지, 

믿음과 행함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줄타기를 잘 견뎌 내고 있는 듯하다. 

믿음과 행함의 사이에 놓인 깊은 골짜기야 말로, 어쩌면 진리로 인도하는 하늘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한 우물에서 쓴물과 단물을 내지 않듯, 믿음과 행함은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고, 

이를 구별하는 골짜기의 경계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에 인용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는 가르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자적으로는 믿음으로 ‘행해야하는 것’으로 

당연히 해석 될 것이고, 상식적으로도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허긴 믿음이 좋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선행을 행하는 것이 다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바울이 목숨을 걸고 로마서에서 가르친 “믿음으로 살리라”는 고백과 함께 성경 전반에 

나오는 믿음의 의미가 모두 허당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행함의 의미, 즉 보이지 

않는 믿음에 걸맞는 보이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선한 행위이긴 하지만, 

세상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믿음이 우리 스스로가 세운 공로가 아니고 은혜로 받은 듯이, “행위 없는 믿음은 사망이다”에서 인용된 보이지 않는 행여란, 곧 은혜로 받은 믿음처럼 은혜로 받은 행위가 되어야 하고, 이 은혜의 주체는 무익한 우리와 무관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계획 하시고, 우리를 그의 자녀로 정하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함이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야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스스로가 저지른 행위야 말로 믿음과는 전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가는 교만과 배반의 씨앗이된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할진데, 우리의 모든 존재와 발전과 열매 맺음이 하나도 빠짐 없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간섭으로, 섭리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하나님의,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한 온전한 행위가 나타나는 믿음의 우리가 되어야 하리라.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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