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shjeong

HealthLife & Style

호르몬 조절이 건강의 답이다!

어제 저녁에는 MBN TV 에서 노화를 지연 시키고, 건강하게 장수할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호르몬 조절을 해야한다는 내용을 흥미롭게 시청했다. 필자의 평소 경험에 의하면, 건강한 육체는 먼저 몸을 직립으로 세워 주는 뼈가 첫째이고,  둘째는 우리 몸의 영양분을 골고루 보내주는 깨끗한 피의 순환, 즉 혈류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었고,  셋째는 우리 몸의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프로를 시청하고 난 뒤에, 호르몬을 하나 더 추가 하여 전자에 나열된 세 가지의 근본이 되게 하였다.  호르몬 작용은 몸의 상태를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조절하는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호르몬 작용의 주요 사항 중에 하나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말고, 늘 평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갑상선 호르몬이 주된 이슈로 논의 되는 가운데, 호르몬 분비가 과할 때와 부족할 때에 나타나는  문제 현상을 설명하는 가운데, 과한 경우에는 혈류가 방해를 받아서 중풍으로 가고, 부족한 경우에는  치매로 가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재미 있는 것은 중풍과 치매 현상이 세포와 뇌의 노쇠 현상 뿐만 아니라, 혈류에 관여하는 갑상선  호르몬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두 경우 모두가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어서 심장의  기능을 급격히 약하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여자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갑상선 암은 다른 암에  비해서 그리 심각하지 않지만, 남성에게는 치사율이 여성에 비해서 6배 정도로 높다고 한다.  남성에게는 그리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갑상선 호르몬이 과할 때에는 식욕이 왕성해져서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먹어도 다이어트가 된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반대로 호르몬 생성이  부족하면, 식욕은 저하되지만, 적게 먹어도 배가 나오고 살이 찐다고 하니, 이런 현상이 있을 때에도  갑상선 호르몬 기능을 체크해 봐야 한다. 인슐린인 경우에는 더욱 심각한 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다른 호르몬은 혈당을 높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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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혜인가?

한 번에 한 걸음, 한 번에 한 사람만 안을 수 있는게 우리 인간의 한계이다.  지혜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의 룰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다.  한 번에 열 걸음을 띄어 걸을려고 하고, 한 번에 두 세 사람을 안을려고 하니,  가랭이가 찢어지거나, 제비족이나 카사노바가 된다. 인생의 지혜 없음은 무지로  통하고, 이는 또 인간들을 불행으로 이끈다. 결국 인간의 무지는 사소한 욕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화두는 비우는 것이다.  비우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한 번에 한 발자국만 띄고, 한 번에 한 사람만 품는 것이다.  결국 비움이란, 지혜로 가는 길이고, 이는 또 진리의 길,  참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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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Style

세상과 구별된 사람, 크리스찬!

오늘 저녁 회의를 마친 후, 저녁을 함께하고 늦은 시간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데,  자리 옆에 장애인의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순간, 이 세상에서 사는 한, 나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장애인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지기는 커녕 왠지 마음이 한결 더 편해졌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장애인이라고 주목을 받을 때에 저 세상에서는 정상인으로 분류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저 세상에서 정상인이라고 분류될 때에는 필히  이 세상에서는 장애인으로 불리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멀쩡하게 정상인으로 호강하며 사는 동안에는 명백하게 단언하건데,  저 세상에서는 존재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  좌석에 앉아 있는 자신이 겨면쩍기 보다는 당연히 앉을 자리에 앉아 있다는 여유도 생겼다.  오늘 장애인의 화두를 새삼스럽게 주제로 삼는 이유는, 오늘 위원회 위원들과 식사를 하는  가운데 나눈 대화 가운데, 위원 중에 한 분이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재미나는 실험에 대해서  이야기 한 내용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실험을 위하여, 정상적인 사람이 정신병자인 것처럼 해서 정신 병동에 입원한 후에,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에게 자신이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료 정신 병자들은 그를 정상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유독 그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만 그가 정신 병자로 진단을 내렸다고 하는데, 처방전에는 그를 ‘과대 망상증 환자’라고 적어  놓았다고 한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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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행함, 그 사이에 놓인 깊은 고뇌?

행위와 믿음 간에 놓인 골짜기의 깊이를 인간의 머리로 가늠하기는 쉽지가 않다.  믿어라 해서 믿으면 행하라 하고, 행하라해서 행하면, 믿으라하고 행하지 말라고 한다.  골짜기 사이에 빠져 있는 성도들은 그야말로 머리가 팽팽 돈다.  그럼에도 진작 강대성에 서서 외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해서 인지,  믿음과 행함 사이에 깊은 골짜기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줄타기를 잘 견뎌 내고 있는 듯하다.  믿음과 행함의 사이에 놓인 깊은 골짜기야 말로, 어쩌면 진리로 인도하는 하늘의 열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한 우물에서 쓴물과 단물을 내지 않듯, 믿음과 행함은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고,  이를 구별하는 골짜기의 경계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야고보서에 인용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는 가르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문자적으로는 믿음으로 ‘행해야하는 것’으로  당연히 해석 될 것이고, 상식적으로도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허긴 믿음이 좋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선행을 행하는 것이 다연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바울이 목숨을 걸고 로마서에서 가르친 “믿음으로 살리라”는 고백과 함께 성경 전반에  나오는 믿음의 의미가 모두 허당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행함의 의미, 즉 보이지  않는 믿음에 걸맞는 보이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선한 행위이긴 하지만,  세상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믿음이 우리 스스로가 세운 공로가 아니고 은혜로 받은 듯이, “행위 없는 믿음은 사망이다”에서 인용된 보이지 않는 행여란, 곧 은혜로 받은 믿음처럼 은혜로 받은 행위가 되어야 하고, 이 은혜의 주체는 무익한 우리와 무관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계획 하시고, 우리를 그의 자녀로 정하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함이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야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스스로가 저지른 행위야 말로 믿음과는 전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가는 교만과 배반의 씨앗이된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할진데, 우리의 모든 존재와 발전과 열매 맺음이 하나도 빠짐 없이 온전하게 하나님의 간섭으로, 섭리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하나님의,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한 온전한 행위가 나타나는 믿음의 우리가 되어야 하리라.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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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향한 영원한 엑스더스?

인간은 누구나 탈출을 추구한다.  아마 이것이 창조 본능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게 하는 가운데,  탈출이라는 편리한 용어가 생성된 것이다.  인간의 시작과 끝의 모두는 변화를 향한 몸부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결국은 변화를 향한 탈출로 이어지는 긴 행렬 속에 자유라는 근사한  목표도 설정된다.  과연 무엇으로의 자유일까?  정체로 부터의 자유, 영원한 변화로서의 생명력을  보장 받고자 하는 것이 자유의 동기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자유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도전이요, 원초적 본능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변화를 향한 영원한 엑스더스가 자유이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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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십자가 짐, 자기 부인, 성화!

진정한 용서란, 하나님이 스스로 율법을 깨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용서의 문자적 의미는 죄를 눈감아 주는 것이다. 공의란 율법대로 죄를 처벌하는 것이다.  만약 죄를 지었는데도 제대로 법을 적용해서 처벌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불의한 것이요, 부정한 것으로 된다. 그렇다면 죄를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으로서는  용서가 허락되지 않는 것이고, 용서하는 자는 필히 공의로운 율법의 단죄를 받게 되어  있다고 하겠다.  예수는 근본 하나님이시면서 용서를 구하려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율법을 스스로 깨기 위해서 용서라는 새로운 성령과 은혜의 법으로  오신 것이다. 그리고 공의의 마지막 율법을 완성 시키시고자, 율법의 지시대로 십자가의  처형을 스스로 감당하게 되신 것이다. 율법의 시작이요, 끝이신 하나님께서 이제 율법을 끝내고,  생명 주시는 성령의 영으로서 새 시대를 열고자 하신 것이다.  이 구원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첫 시도가 바로 회개하는 백성들을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작업이고, 이를 우리는 용서라고 부른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용서는 없다. 왜냐하면,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율법이라는 높은  장애물을 걷어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필히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은 율법에 대한 희생 재물에 해당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율법이란 죄의 범주를 정하는 것 외에,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선하게 사용된 것으로 이는 십자가를 지게 하여, 자아를 부인하게 하는 성화의  아름다운 목적을 이루게 한다고 하겠다.  ‘성화’란, 거룩하고 고매한 인격을 갖추기 위한 수양을 닦기 위함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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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택? 가짜 선택?

율법 앞에는 모두가 같은 죄인 이지만,  누구는 죄를 통해 하나님을 선택하는 반면에  누구는 죄를 두둔하고 죄를 선택한다.  예수님 십자가 좌우에 두 죄인이 있었지만,  한 죄인은 예수님을 선택하고, 다른 한 죄인은  죄를 선택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옥과 천국은 죄의 본질로부터  무엇을 선택하는 가에 의해 결정된다.  생명과 진리를 찾는 방법도 사망과 비진리를 바탕으로  시작해서, 무엇으로 끝내는가에 따른 선택에 의해서  전적으로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깨달음은 어떤 선택도  피조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진리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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