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shjeong

Life & Style

예수와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 이후?

“예수와 만난 사람들?” 이라는 주제를 떠 올려 본다.  대표적인 인물들로서 간음을 저질러서 돌에 맞아 죽을 마지막 까지 갔던  창녀와 소경 바디메오와 물이 동하길 기다렸던 앉은 뱅이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던 나사로 등등의 수 많은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어느 유명 작가가 쓴 내용이 있었는데, 모두가 예수를  만나기 전인 본래 보다 더 타락한 모습으로 전락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상으로  묘사되어서 독자들에게 센셔이셔널한 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었음을 기억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간섭하지 않은 곳에서는 부활의 생명을 살리는 영이  없음으로 인해서, 어떠한 기적을 체험한다 할지라도 인간 스스로가 일어 설 수  없다는 엄연한 진실을 살필 수 있는 소중한 부분 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인간이  하나님이 없으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마지막 대단원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예수를 옆에서 보좌한 제자들 조차도 예수 생전에 진심으로 거듭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로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게 하는 현장에서 기적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 중에도  예수 살아 생전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 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는 진실을  받아 들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의 후속 편’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번데기가 예수를  만난 이후에 나비가 되어 개가선천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뿐더러, 또한 한 사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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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의 삼겹줄!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Redemption)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접할 때마다, 구속의 의미를 구원(Salavation)과 은혜(Grace)와 영광(Glory)와 계시(Revelation)의 영어 단어와 늘 겹쳐져서 진정한 구속의 의미를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지난 주일에는 영어 찬송을 부르다 우연히 구속이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에, 지금까지 가져 보지 못 했던 구속의 의미가 새롭게 마음을 사로 잡으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강한 사랑과 긍휼함을 새삼스레 느끼는 기쁨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의미는 마치 어미가 그가 낳은 어린 자식에 대해 조건을 두지 않고 가지는 모든 것을 그대로 이해할 듯 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정하사 의롭다 하시고, 영화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들에게 죄없다 하시며 의롭다 하신, 모든 것이 어린 자식을 향한 어미의 마음으로 다가 오시는 그 긍휼한 마음을, 그가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새로운 의미로 퍼뜩 이해를 가지게 되었고, 비로소 의심 없는 편안한 어린 애기의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으로 화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바이다. 하나님 구속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과 입장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강권으로 하나님 뜻 안에 우리를 두시고 꼭꼭 묶어서 꼼짝도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사, 죄 없다하시고, 또 의롭다고 하시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사건인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그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두시고, 그의 사랑의 두꺼운 삼겹줄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누가 감히 우리를 묶은 하나님 사랑의 구속의 줄을 끊으리요!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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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음, 한 마음!

인간의 탐심이란, 두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고, 이를 죄라고 한다. 땅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을 구별하지 않고, 자기 에고에 따라서  양 쪽을 오가며 자기 입맛 대로 선택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보편적인 성품인 탐심을 가진 인간은 결국 죄인의 범주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특히 현대 종교에서 교회가 가지는 보편적인 특성을 살펴 본다고 해도 죄인들의  탐심에 근거해서 두 가지, 즉 땅과 하늘의 영광을 모두 소유하기 위해 불철주야  교세를 넓히고자 하는 모습을 보아도 현대 교회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 가증한  죄의 본질에서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탐심이란,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결국 이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 비어 있을 때의 현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죄인 되는 것도  우리의 에고로 인한 탐심 이전에 하나님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죄인이 되는 것도, 의인이 되는 것도 순전히 우리 안에 하나님이 채워 있는지?  비어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하겠다. 우리의 에고를 중심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우리의 생각 만큼이나 복잡하고 갈 길이 멀게 되지만,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만 관점을 두고 살펴 보게 되는 한, 진리의 천국에 닿는  길은 단순하고 쉬울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두 마음을 가지게 되는 이유도 먼저 하늘의 의와  나라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의 의와 나라를 기반으로 생각하고자 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어둠에서 빛으로, 구약의 율법에서 신약의 은혜로, 선악과에서 생명과로,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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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합의 자연의 원리?

고결한 여인에게는 부정한 남편이 있고,  신실한 남편에게는 불의한 여인이 있다.  세상에는 이와 같이 선과 선이 함께 할 수 없고,  악과 악이 함께 할 수 없음은 모든 것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의 법칙으로, 모든 것이 변한다는 원칙 아래,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다. 정정합이나 반반합이  아니라, 정반합이라는 자연의 원리가 적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반합의 자연 법칙이 적용되는 유한한 세상이  무한한 진리의 절대적인 영원성으로 지향하는  창조주의 특성을 나타내는 모형으로 지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안응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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