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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탈출?

우리가 가지는 익숙한 것의 틀이란 무엇인가? 

익숙한 것의 틀이란 본래 우리의 오감을 통해서 감지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리고 육감을 통해서 느끼는 대로 종합하여 판단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후 이것이 관습이 되고, 관습대로 따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대개는 우리의 육의 요구에 따라서 행하는 것들을 익숙한 것들의 틀이라고 하겠다. 

육의  반대되는 의미로 흔히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없는 영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육이라고 하면, 하늘 세상을 영이라고 표현하고, 보이는 세상을 육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진리의 세계를 영이라고도 한다. 

익숙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을 의미하고,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보이지 않는 진리의 세계라고 하고, 익숙한 세계를 떠나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익숙한 것들로 부터의 탈출이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일반적인 현상을 부인하고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깨달을 수 있는 진리의 세계를 인정하고,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기를 부인한다고도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 현상을 부인하고, 대신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진리의  세계를 깨달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안다는 것이고, 성경의 모든 말씀을 문자적인 로고스로 보지 않고, 레마의 흐름으로 본다는 것이다. 

레마의 말씀은 마치 소중한 진주와 같아서, 이를 발견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팔아서 이를 마련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육에 익숙해져 있어서 먹고 마시고 자는 의식주 생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흔히 이를 인생의 전부 인 양 여기며 이것을 진리 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우상으로 섬기며 살고자 한다.

육에서는 십자가는 고통이요, 죄의 상징이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십자가가 구원이며, 언약의 확정이며, 부활 생명의 의미로 각인된다. 이러한 영의 세계를 체험하고 믿음으로 확정하는 한,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인도 하에 익숙한 육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히 영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때에 육은 진리 안으로 완전히 녹아 들어서 육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는 육의 존재가 진리 안으로 녹아 들어, 육을 주장하지 못하고, 부인되게 된다. 바울이 육을 떠나 이러한 진리와 하나되는 체험을 행했을 때, 성경에 서술하기를 ‘몸 안인지 밖인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삼층천의 경험을 서술할 때에 사용한 표현이다.

육이 진리 안에 완전히 녹아 들어 육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천국을 경험사는 것이라 하고 바울은 이를 삼층천에 갔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다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고, 신랑되는 어린양 그리스도 예수와 신부인 예루살렘 성이 하나가 되는 그 때를 이 땅에서도 살아서 경험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 안응 곽계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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