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내 탓이로소이다!

[(닦이지 않는 유리)

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어왔습니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넣으면서 차의 앞 유리를 닦아 주었습니다.

기름이 다 들어가자 직원은 그 부부에게 다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직원은 얼른 알겠다고 대답 하고 다시 앞 유리를 닦으면서

혹시 자신이 보지 못한 벌레나 더러운 것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며

유리를 한 번 더 닦아냅니다.

직원은 다시 다 되었다고 공손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남편은

“아직도 더럽군! 당신은 유리 닦는 법도 몰라요? 한 번 더 닦아 주세요!”

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손을 내밀어 남편의 안경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휴지로 렌즈를 깨끗하게 닦아서 남편의 얼굴에 다시 씌워

주었습니다. 남편은 깨끗하게 잘 닦여진 앞 유리창을 볼 수 있었고 그제야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얼룩진 안경을 끼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세상의 모든 일들도 색안경을 끼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잣대를 맞추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에게 하루가 주어져 있음을 감사합니다. 밥과 몇 가지 반찬, 풍성한

식탁은 아니어도 오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렵니다. 누군가 내게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할지라도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렵니다.

햇살의 따스함에 감사하고, 바람의 싱그러움에 감사하고

나의 마음을 한껏 풀어 글을 올릴 수 있음에 감사하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났음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고

희미한 별빛 하나 빗방울 하나에도 눈물겨운 삶 속에서도 환희를

느낄 수 있는 맑은 영혼의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Kyu-hong Park님-

좋은 가르침 공유합니다.

안경을 닦아도 닦아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근시(近視)와

난시(亂視)를 가진 자가 바로 나라고 확신하니, 내 안경 탓도

아니라는 믿음이 있지요.

모든 것이 죄로 인한 내 눈 탓이요, 생각 탓이요, 내 감정과

의지의 탓이겠지요. 그러니 두 말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내

옛 사람의 변하지 못한 못난 모습 탓이랍니다. 그러니 살아

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추악(醜惡)한

죄인(罪人)을 그저 감격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지요.

비록 내 모습이 한심할지언정,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오늘을 이렇게 보란 듯이 영광의 면류관인 화려한

삶의 자리로 차지한 오늘의 주인공이니까요.

그렇다고 행여나 죽은 사람을 욕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지요.

죽은 사람을 위해서 열심히 주어진 삶의 자리를 닦고 조여서

그분이 원했던 아름다운 삶의 정원을 가꾸어야겠지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하나가 되어 장차 죽을 사람과 살

사람들과 꿈과 이상을 통해서 모두가 하나의 우주의 생명을

영원히 아름답게 이루어 가는 것이지요.

오늘도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모여서 진리를 향한

힘 찬 발걸음이 될 것을 기도하면서, 모두가 하나 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

‘빛의 공동체‘,

‘능력의 공동체’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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