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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이후의 의미, 의의 면류관?

1. “왜, 진리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삶의 본질과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의미 없는 세상 일로 분주하게 살고 싶으세요? 아니면 물고기와 삶의 고통을 통하여 삶의 본질과 내용을 올바로 알아가며 세상의 본질을 깨달아 보는 구원 받은 자로 살고 싶으십니까?

2. “세상의 본질과 진실을 보는 것은 오케잇,

그러나 하늘의 본질과 진실을 보고자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비록 진리를 깨달아 성경의 모순점을 깨달아 하나님 뜻을 헤아려 세상에서 선택된 자, 구원된 자로, 하늘의 별들로 구별된다고 한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한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비밀 중의 비밀인 하늘 나라를 누리는 것은 또 어떻게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것인가?

“하늘에서의 깨달은 자의 존재감은

무엇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믿음의 길을 다 달려간 바울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한 자에게 허락된 ‘의의 면류관’은 과연 어떤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 오는 것인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 7-9>

1. “진리를 깨달은 자로서, 열심히 법을 지켜 낼 테니 하나님 당신은 내가 원하는 구원, 내가 원하는 천국 내가 원하는 행복을 달라는 것인가?”

2.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3. “주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끝내시면서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니, 가로되 자비를 베푸는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10: 36-37>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하나님 아가페를 사랑의 마음으로 나아가

처음 만나는 이웃은 바로 나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 이는 가장 먼저 이웃이 되어 버린 나에게 진리를 계속해서 들려 주고 싶어해야 합니다. 이제 내가 강도 만난 자였음을 아니까요.

진리에 입문 한 이는 반드시 그 진리에 목말라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그 진리의 말씀을 풍성하게 흘려 주고 싶어해요

그게 일차적 이웃사랑입니다.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계속 흘려 넘겨 주는 것이 사랑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렇게 진리를 흘려서 나를 사랑해 주기 위해서는 먼저, 이전의 나,

즉 율법에 묶여 있었던 내가 미워져야겠지요.

<누가복음10: 25-28>

이차적인 이웃 사랑은 강도 만난 자에 불과한 자신의 실체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선한 이웃으로 자기를 찾아온 진리의 사자로부터 그 아가페 사랑을 듬뿍 받아 다른 이웃에게도 그 사랑을 흘려 주는 자로 사는 것이 영생을 얻는 것이지요.

결국, 진리를 깨달은 자가 누릴 영광은 세상에서나 하늘에서나 구분 없이 내 안에 성전으로 계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됨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도 강도 만난 자의 선한 사마리안으로, 자신을 포함한 이웃에게 그리스도 예수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도천 곽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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